📚 『아몬드』 – 감정을 모르는 소년이 알려주는 마음의 언어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것은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기뻐서 웃고,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이며,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인간다움의 핵심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이런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어떨까요? 손원평 작가의 소설 『아몬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감정이 결핍된 소년 윤재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다름’을 통해 발견하는 관계와 공감의 본질을 탐색합니다.
단순한 청소년 소설을 넘어, 우리 사회가 타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는 뇌의 편도체가 발달하지 않아 분노나 두려움 같은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눈물이나 웃음을 이해할 수 없고, 왜 모두가 같은 순간에 같은 반응을 보이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표정 속에서도 차분하고 또렷합니다.
독자는 윤재의 시선을 따라가며 감정이라는 익숙한 언어가 사실은 얼마나 복잡하고 불완전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이야기는 극적인 사건보다, 윤재가 세상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주며 독자에게 사유의 여지를 남깁니다.
이 소설의 매력은 ‘감정의 부재’가 단순한 결핍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윤재는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식대로 웃거나 울 수는 없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주변을 관찰하고 이해합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과 건조한 말투 속에서도, 타인을 향한 작은 배려와 관심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 ‘공감’이란 같은 감정을 느끼는 행위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곁에 있는 것 자체가 이미 또 다른 형태의 공감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독자로 하여금 우리가 흔히 ‘보통’이라 부르는 감정의 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아몬드』가 주는 울림은 의외로 크고 묵직합니다. 처음엔 윤재의 건조한 세계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읽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세계 안에 숨은 따뜻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빠르게 반응하고 즉각적으로 공감을 표시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고 믿었던 우리의 삶은, 윤재의 느린 속도와 차분한 태도 속에서 다른 가능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결국 이 소설은 독자에게 ‘속도를 늦추어 타인을 바라보는 연습’을 권하는 듯 보입니다.
『아몬드』는 감성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감정 표현이 서툴러서 관계가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 혹은 타인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특히 추천할 만한 책입니다. 때로는 말 없는 침묵이, 때로는 단순한 곁에 머무름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알게 될 테니까요. 윤재의 눈을 빌려 바라본 세상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다정함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 클로이의 노트 ::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다름과 연결, 그리고 진정한 공감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손원평의 대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