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을 건너는 문장들 <하루 끝, 마음을 씻어내는 독서2 -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 >

CHLOENOTE 2025. 8. 15. 21:46

하루를 끝낼 때 읽기 좋은, 차분하고 서정적인 세 권의 책입니다.
퇴근 후, 잠들기 전, 혹은 마음이 복잡할 때 꺼내 읽기 좋은 책들로 골랐습니다.

 

두번째 책은, 백영옥 작가의 <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 > 입니다.

어릴적 읽었던 '빨강머리 앤'의 추억을 다시 떠올려보세요. 혹시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괜찮습니다.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 – 백영옥

[ 어린 날의 나와 지금의 나를 이어주는 다정한 다리 ]

 어린 시절의 책장을 열어보면, 낡고 빛이 바랜 표지 속에 여전히 눈부시게 살아 있는 이름이 있다. ‘빨강머리 앤.’ 그녀는 언제나 초록 지붕 집의 창문을 열고 우리를 맞아주었다. 백영옥의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은 그 시절의 따뜻한 햇살과 바람, 그리고 순수했던 마음의 온도를 다시 불러오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짚는 회상록이 아니다. 앤의 이야기를 매개로, 과거와 현재의 ‘나’를 잇는 다정한 대화이자 성장의 기록이다.

백영옥의 글에는 특유의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 공존한다. 그는 앤을 사랑했던 ‘어린 나’를 먼저 꺼내어 놓는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때로는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한 사소한 슬픔까지. 그리고 그 옆에, 지금의 자신을 나란히 세운다. 어른이 되어 겪은 상실과 회복, 관계의 복잡함 속에서 앤이 남겨준 문장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지, 그 과정을 세심하게 풀어낸다.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우리가 사랑했던 캐릭터는 단순한 상상의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앤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며, 중요한 순간마다 조용히 손을 내민다. 낯선 환경에서 길을 잃었을 때, 세상의 불합리함에 부딪혔을 때, 혹은 너무 외로워서 아무 말도 하기 싫은 날—앤은 특유의 긍정과 상상력으로 우리를 끌어올린다. 이 책은 바로 그 순간들을 기록해 놓은 일기이자 위로다.

백영옥의 문장은 길지 않지만, 한 줄 한 줄이 깊다. 감정을 과하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독자의 마음을 흔든다. 앤의 대사나 장면을 인용할 때는, 마치 그 시절의 공기와 색감까지 되살아나는 듯한 생생함이 있다. 그래서 독자는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을 넘어,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건네는 편지다. 바쁘고 무심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어린 날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묻는다. “넌 잘 지내고 있니?”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마음속 앤과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나서야 깨닫는다. 여전히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은, 오래전 책 속에서 만난 그 소녀라는 사실을.

이 책은 서둘러 읽을 필요가 없다. 비 오는 오후, 조용히 커피를 내려 마시며 한 장씩 넘기기에 제격이다. 앤이 들려주는 말과 백영옥이 담아낸 삶의 이야기는, 마치 오랜 친구와 나누는 대화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한동안 마음속에서 대답이 이어진다. “그래, 나 잘 지내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지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