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을 건너는 문장들 < 하루 끝, 마음을 씻어내는 독서1 - 밤의 여행자들 >
안녕하세요, 클로이의 노트, 클로이 입니다.
하루를 끝낼 때 읽기 좋은, 차분하고 서정적인 세 권의 책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퇴근 후, 잠들기 전, 혹은 마음이 복잡할 때 꺼내 읽기 좋은 책들로 골랐습니다.
『밤의 여행자들』 – 윤고은
낯선 도시의 밤, 그 고요함을 걷는 사람들
밤은 모든 것을 느리게 만들고, 사람을 조금 더 정직하게 만든다. 낮에는 번쩍이던 간판과 소음이 사라진 뒤, 도시의 표정은 한결 부드러워지고, 때로는 쓸쓸해진다.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은 바로 그 시간, 그 기운 속에서 태어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책이 단순한 여행 에세이나 도시 산책기가 아닌 이유는, 저자가 그 ‘밤’ 속에서 사람과 공간,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시간을 세밀하게 잡아내기 때문이다.
책 속의 인물들은 목적 없이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각자의 결핍과 욕망, 그리고 잊지 못한 기억들을 끌어안고 있다. 독자는 그들과 함께 걷는다. 가로등 아래에서, 골목 모퉁이에서,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가게 앞에서 스치는 장면들이 조금씩 마음에 내려앉는다. 이 장면들은 설명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공기와 냄새, 그리고 약간의 체온만을 남긴다.
윤고은의 문장은 독특하다. 도시의 밤을 묘사하면서도 낭만에만 기대지 않는다. 차가운 공기의 결과, 불빛이 스미는 각도, 인물들의 무심한 동작까지 세밀하게 그려낸다. 그러다 문득, 예기치 못한 문장이 툭 떨어져 독자의 가슴을 찌른다. ‘아, 이건 내가 기억해야 할 문장이다’ 하고 속으로 되뇌게 되는 순간들. 그런 문장이 많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여행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어디론가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다. 익숙한 거리를 전혀 다른 시간대에 걷는 것도, 말없이 누군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도 여행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여행은 반드시 목적지로 귀결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걷는 시간’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밤에 걷는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 용기 있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낮의 익명성 뒤에 숨어 살던 마음이, 어둠 속에서는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밤이 되면 조금 더 솔직해진다. 낮에는 웃으며 지나쳤던 일들이, 밤에는 마음속에서 다른 모양으로 부풀어 오른다. 『밤의 여행자들』은 그 감정을 숨김없이 받아 적는다.
책장을 덮고 나면, 내 안에도 ‘밤의 여행자’가 깃든다. 다음 번 퇴근길, 불현듯 한 정거장 전에 내려 걷고 싶어진다.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알 수 없지만, 그 길에서 만날 작은 풍경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윤고은의 글은 그 길을 안전하게, 그러나 조금은 낯설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밤에 읽기 좋은 책’이 아니라, ‘밤을 다시 보게 하는 책’이다. 조용한 주말 밤, 혹은 여행지의 늦은 저녁, 이 책을 들고 나가 한 페이지씩 읽다 보면, 도시가 조금씩 새로운 표정을 띤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 역시, 조금은 다른 결로 빛나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