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책을 고르려 하면 망설이는 순간이 있다. 서점에 가면 수많은 책이 진열되어 있고, 온라인에는 끝없는 추천 목록이 떠 있다. 그러나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오히려 판단은 어려워진다.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정작 나에게 맞는 책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읽어도 어딘가 겉도는 느낌, 좋은 책이라고는 하는데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경험. 우리는 이 낯섦을 종종 취향의 문제로 돌리지만, 그 이면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숨어 있다.
나에게 맞는 책을 찾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나’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책을 고를 때 취향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생각하지만, 그 취향은 생각보다 유동적이다. 지금의 나는 어떤 질문을 품고 있는지, 무엇이 불편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그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책을 선택한다. 결국 책은 현재의 나와 엇갈린다. 책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어떤 상태인지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찾는 일은 사실 나를 먼저 확인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두 번째 이유는 좋은 책과 맞는 책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이 좋고 많이 읽힌 책을 ‘좋은 책’이라고 판단한다. 물론 많은 사람에게 의미가 있었던 책은 일정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 가치가 곧 나의 경험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좋은 평가와 나에게 맞는 경험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책은 객관적인 품질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독서 경험은 언제나 개인의 상황과 감정, 질문과 만날 때 완성된다. 그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도 내 삶에서는 공허하게 남을 수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책을 통해 즉각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책을 해결책처럼 대한다. 불안할 때는 불안을 다루는 책을, 관계가 어려울 때는 관계를 설명하는 책을 찾는다. 물론 이런 선택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책은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는 도구가 아니다. 읽는 순간 마음이 달라지기를 기대하면,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실망이 더 크게 남는다. 나에게 맞는 책은 변화를 보장하는 책이 아니라, 현재의 질문을 함께 견디는 책일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이유는 외부의 기준을 지나치게 따르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목록, 유명인의 추천, SNS에서 반복되는 언급. 우리는 이런 정보들을 통해 책을 고른다. 그러나 외부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취향의 결과일 뿐이다. 그 평균이 나의 상태와 정확히 겹칠 확률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추천을 참고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추천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나에게 맞는 책은 누군가 대신 선택해 줄 수 없다.
나에게 맞는 책을 찾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독서 취향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한때 좋아했던 장르가 더 이상 흥미롭지 않게 느껴지고, 예전에는 멀게 느껴졌던 책이 갑자기 마음에 와닿는 경험. 취향은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삶의 흐름을 반영하는 감각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의 취향을 기준으로 현재의 책을 고르려 한다. 취향이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선택은 계속 어긋난다.
여섯 번째 이유는 책을 고르는 과정에서 충분히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빠르게 결정하고, 빠르게 읽고, 빠르게 넘어간다. 책을 고르는 시간보다 읽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나에게 맞는 책을 찾는 과정 자체가 사유의 일부다. 책의 문장을 잠시 읽어보고, 목차를 천천히 훑고, 나의 현재 상태와 겹쳐보는 시간. 이 여백이 부족하면 선택은 얕아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 이유는 나에게 맞는 책을 ‘하나’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인생책이라는 표현을 쓴다. 모든 질문에 답해 줄 한 권의 책을 기대한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나에게 맞는 책은 시기마다 달라진다. 어떤 때는 위로가 필요하고, 어떤 때는 통찰이 필요하며, 또 어떤 때는 그저 조용한 동행이 필요하다. 하나의 책이 모든 시기를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결국 나에게 맞는 책을 찾는 일은 나의 상태를 이해하는 일과 닮아 있다. 책을 통해 나를 확인하려 하기보다, 나를 먼저 들여다본 뒤 책을 선택하는 태도. 이 순서가 바뀌면 독서는 더 자주 어긋난다. 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독서 경험은 독자의 준비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나에게 맞는 책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어떤 질문을 안고 있는가. 이 질문을 충분히 거친 뒤에야 책은 비로소 나와 만난다. 독서는 정보를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탐색하는 과정에 가깝다.
그래서 때로는 책을 찾지 못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자신의 질문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질문이 선명해질수록 선택은 자연스러워진다. 나에게 맞는 책은 어딘가에 숨어 있는 정답이 아니라, 나의 상태가 준비되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만남에 가깝다.
클로이의 노트 ::
그동안 나는 나에게 맞는 책을 찾지 못할 때마다 취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며 깨달은 것은 책을 고르는 문제보다 나의 상태를 들여다보는 일이 먼저라는 사실이다. 좋은 책과 맞는 책은 다르다는 문장이 오래 남는다. 독서는 정보를 얻는 행위가 아니라, 나의 질문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이제는 추천 목록을 더 뒤적이기보다, 지금의 나에게 먼저 묻고 싶다.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질문을 안고 있는지. 그 질문이 선명해질수록, 책은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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