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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관계를 지키는 언어에 대하여 - 『비폭력대화』를 읽고

by CHLOENOTE 2026.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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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폭력대화』를 읽기 전까지 나는 대화를 비교적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의견을 분명히 말할 수 있었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고 노력한다고 믿었다. 갈등이 생기면 감정을 쏟아내기보다는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했고, 불편한 상황에서도 최대한 예의를 지키려 애썼다. 그래서 대화가 자주 어긋나고, 말 한마디로 관계가 서서히 멀어질 때마다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내가 폭력적인 말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 폭력적인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비폭력대화는 말의 톤이나 표현을 고치는 기술이 아니라, 타인과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근본부터 바꾸는 언어라는 점에서 예상보다 훨씬 깊은 울림을 주었다.

 

 

 마셜 로젠버그가 말하는 ‘폭력’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공격적인 언어나 분노의 폭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평가, 판단, 비교, 비난이 섞인 모든 언어를 폭력의 한 형태로 본다. 이 정의는 처음에는 다소 과하다고 느껴졌지만, 책을 따라가다 보니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상대를 평가하며 말하는가. “그건 네가 예민해서 그래”,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게 안 해”, “왜 항상 그런 식이야” 같은 말들은 겉보기엔 조언이나 사실 전달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판단이 담겨 있다. 이 책은 그런 말들이 상대의 마음을 닫게 만들고, 결국 진짜 대화를 가로막는다는 사실을 차분히 보여준다. 비폭력대화는 상대를 설득하기 전에, 먼저 연결되기 위한 언어라는 점에서 기존의 대화법과 분명히 달랐다.

 

 

 이 책의 핵심은 관찰, 감정, 욕구, 요청이라는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대화 구조다. 처음에는 이 구조가 너무 이상적이고, 실제 삶에서는 적용하기 어려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책 속 사례들을 따라가다 보니, 이 방식이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갈등 상황에서 감정과 평가를 뒤섞어 말한다. “너는 항상 나를 무시해”라는 말에는 사실(관찰)이 아니라 해석과 감정이 함께 들어 있다. 비폭력대화는 그 문장을 “회의 중에 내 말을 끊었을 때, 나는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어”처럼 바꾸도록 제안한다. 이 변화는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상태를 정확히 드러내는 방식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감정을 평가라는 옷을 입혀 전달해왔는지 떠올리게 되었다.

 

 

 『비폭력대화』가 특히 인상 깊었던 이유는, 이 언어가 타인을 변화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대화법 책들이 상대를 설득하거나 갈등을 유리하게 이끄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비폭력대화는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 자체가 폭력일 수 있다고 말한다. 대신 이 책은 나의 감정과 욕구에 책임지는 태도를 강조한다. 상대가 나를 힘들게 한다고 느낄 때, 그 감정의 원인을 상대의 행동에만 두지 않고, 그 행동이 내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는지 바라보도록 이끈다. 이 관점은 대화의 책임을 다시 나에게 돌려놓는다. 상대를 통제하려는 언어 대신, 나를 이해하는 언어를 선택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머물렀던 부분은 ‘공감’에 대한 설명이었다. 우리는 공감을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행위 정도로 이해한다. 하지만 마셜 로젠버그가 말하는 공감은 훨씬 적극적이고, 동시에 어려운 태도다. 공감이란 상대의 말 속에서 평가나 비난을 걷어내고, 그 안에 숨겨진 감정과 욕구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누군가 공격적으로 말할 때, 그 말을 그대로 받아치기보다 “이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 이 과정은 쉽지 않다. 오히려 순간적으로 손해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책은 공감이야말로 갈등의 악순환을 멈추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빨리 방어하고, 얼마나 빨리 반격해왔는지를 떠올렸다.

 

 

 『비폭력대화』는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상처가 생겼을 때, 그 상처를 어떻게 언어로 다룰 것인지 묻는다. 우리는 종종 참다가 폭발하거나, 아예 말하지 않음으로써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침묵 역시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의 욕구를 끝내 표현하지 않는다면, 관계는 결국 왜곡된 균형 위에 놓이게 된다. 비폭력대화는 솔직함과 배려를 동시에 포기하지 않는 언어다. 나의 감정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비난하지 않는 방식. 이 균형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이 책의 메시지는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대화가 잘 풀리지 않았던 장면들을 하나씩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말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말이 향하고 있던 방향이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상대를 설득하거나 이기기 위해 사용한 말들은 결국 나 자신을 더 고립시켰다. 비폭력대화는 대화의 목적을 다시 정의하게 만든다. 대화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욕구를 이해하고 연결되는 과정이라는 것. 이 정의는 관계를 훨씬 덜 소모적인 것으로 바꿔놓는다.

 

 

 『비폭력대화』는 읽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상대보다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언어를 선택해왔는지, 그 언어가 어떤 욕구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오래 남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말은 생각보다 강력하고, 동시에 쉽게 무기가 된다. 이 책은 그 무기를 내려놓는 법을 가르쳐준다. 상대를 이기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나와 상대 모두를 지키는 언어를 선택하는 법을.

 

 

 책을 덮으며 나는 더 말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보다, 덜 다치게 말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타인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향해 있었다. 비폭력대화는 관계를 바꾸기 전에,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먼저 바꾸는 언어였다. 그래서 이 책은 대화법을 넘어, 삶의 태도에 관한 책으로 오래 남는다.

 

 

클로이의 노트 :

 『비폭력대화』는 말을 고치는 책이 아니라,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책이었다. 나는 그동안 솔직하게 말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솔직함 속에는 평가와 판단이 섞여 있었다. 이 책은 상대를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감정과 욕구를 드러내는 언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화의 목적이 설득이나 승리가 아니라 연결이라는 점을 깨닫는 순간, 말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더 잘 말하고 싶어지기보다 덜 다치게 말하고 싶어졌다. 그 변화가 관계를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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