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뭐라고』를 읽으며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웃음도, 위로도 아닌 묘한 안도감이었다. 이 책은 독자를 다독이지도, 더 잘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대신 아주 담담하게, 거의 무심할 정도로 삶을 바라본다. 그 시선이 오히려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준다. 사노 요코는 삶을 거창하게 정의하려 들지 않는다. 성공도, 의미도, 성장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 그저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있는 그대로 꺼내 보인다.
우리는 늘 ‘사는 이유’를 찾느라 애쓰고, 삶에 이름을 붙이느라 분주하지만, 이 책은 그 모든 질문을 슬쩍 밀어두고 말한다. “사는 게 뭐라고.” 이 문장은 체념처럼 들리지만, 읽다 보면 이상하게도 가벼운 숨이 트인다. 삶을 무겁게 붙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조금 빠지는 느낌 때문이다. 이 책은 인생을 잘 사는 법이 아니라, 인생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먼저 알려준다.
사노 요코의 문장은 날카롭고 솔직하다. 그는 자신의 노년, 병, 가족, 인간관계, 그리고 죽음에 대해 숨김없이 말한다. 그러나 그 솔직함은 감정을 과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본다. “짜증난다”, “귀찮다”, “살기 싫다” 같은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지만, 그 말들에는 과장이 없다. 그래서 더 진짜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보통 이런 감정을 숨기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노 요코는 그런 감정조차 삶의 일부로 인정한다. 삶은 늘 성실하거나 아름답지 않으며, 때로는 귀찮고 형편없고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자기 삶의 결함들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보게 만든다. 잘 살지 못한 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하루, 이유 없이 우울했던 시간들이 더 이상 실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그런 날도 삶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허락된다.
이 책이 특히 인상적인 이유는, 노년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노 요코는 이미 많은 것을 지나온 사람의 자리에서 말한다. 그래서 그의 문장에는 조급함이 없다. 젊은 시절의 욕망과 불안, 비교와 경쟁을 이미 충분히 통과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가 느껴진다. 그는 더 이상 잘 보이려 하지 않고,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삶의 사소한 불편함과 우스운 장면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병원 대기실의 무료함, 늙어가는 몸에 대한 짜증, 타인에게 쉽게 기대하지 않게 된 마음. 이런 이야기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우리는 젊을 때 삶을 ‘증명’하려 들지만, 이 책은 말한다. 인생의 후반부에는 증명보다 ‘그냥 살아내기’가 더 중요해진다고. 이 시선은 독자에게 삶의 속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사는 게 뭐라고』는 위로를 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위로를 요구하지 않는 책에 가깝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큰 위로가 된다. 이 책은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안 괜찮아도 살아진다”고 말한다. 삶이 늘 좋아질 필요는 없고, 의미로 가득 차 있을 필요도 없으며, 매일 성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는 묵직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자기계발의 언어에 너무 익숙해져, 잠시 멈추거나 내려놓는 일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나 사노 요코는 그런 태도를 비웃듯이, 아주 담담하게 하루를 산다. 그 하루는 특별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진실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삶을 ‘관리’하려 들었던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모든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모든 시간을 의미로 채우려 했던 강박이 조금 느슨해졌다.
책을 덮을 즈음, 『사는 게 뭐라고』라는 제목이 새롭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냉소처럼 느껴졌던 이 말이, 읽고 난 뒤에는 묘한 다정함을 품는다. 사는 일은 정말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무겁게 끌어안지 않아도 되고, 더 잘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냥 오늘을 살고, 내일이 오면 또 살아내면 그만이다. 사노 요코는 삶을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삶을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한다. 이 태도는 삶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삶과 조금 거리를 두고 숨을 쉬라는 제안처럼 느껴진다.
『사는 게 뭐라고』는 인생의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에 덜 매달릴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 여유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조금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열심히 사느라 지친 사람, 삶의 의미를 찾느라 스스로를 몰아붙여온 사람에게 특히 잘 어울린다. 무언가를 이루지 못해 불안한 날, 아무 이유 없이 지친 날, 이 책은 조용히 곁에 앉아 말한다. “그래도 괜찮아. 사는 게 뭐라고.” 그 말은 냉정하지 않고, 이상하게도 따뜻하다.
삶을 가볍게 여길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을 조금 더 오래, 그리고 조금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아주 솔직한 문장들로 보여준다.
클로이의 노트 :
『사는 게 뭐라고』는 삶을 붙잡고 애써 의미를 만들려던 마음의 힘을 조금 내려놓게 해준 책이었다. 사노 요코는 인생을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희망으로 몰아가지도 않는다. 대신 귀찮고 짜증 나고 형편없는 순간들까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큰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늘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하루를 평가하지만, 이 책은 그런 평가 자체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사는 일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고, 그래서 더 가볍게 견뎌도 된다는 메시지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열심히 살지 못한 날에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하루에도 숨을 쉬게 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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