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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희망을 말하지 않는 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CHLOENOTE 2025.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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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결의’라기보다 ‘잔존’에 가까웠다. 이 책은 희망을 외치지 않는다. 절망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대신 삶이 이미 충분히 무너진 자리에서, 그럼에도 남아 있는 것들을 하나씩 더듬어 본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고비를 넘길 때 “그래도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을 기대한다. 그러나 공지영의 문장은 그런 위로를 서두르지 않는다. 상처가 여전히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불행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진실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이 책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은 낙관의 구호가 아니라, 도망치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삶이 끝내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포함한 채, 그래도 살아가겠다는 선택. 그 선택의 무게가 이 책의 문장마다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지영의 글에는 늘 상처가 있다. 그것은 개인의 상처이기도 하고, 시대가 남긴 흔적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도 그는 사랑의 실패, 인간관계의 균열, 신앙의 흔들림, 그리고 사회적 비극을 지나온 기억들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상처들이 독자를 향한 감정적 호소로 소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를 하나의 ‘통과 지점’처럼 다룬다. 삶은 상처 이전과 이후로 나뉘지만, 그 어느 쪽도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태도. 이 절제는 독자에게 묘한 신뢰를 준다. 과장된 감정이나 극적인 구원 없이도, 삶을 계속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깊은 위로가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고통을 말하지 않는 용기보다 고통을 과장하지 않는 태도가 얼마나 단단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감정은 좌절이 아니라 회복의 지연이다. 우리는 흔히 상처를 입으면 곧바로 회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아픔에는 기한이 있고, 슬픔에는 마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 기대를 조용히 거부한다. 어떤 상처는 평생 남고, 어떤 질문은 끝내 해답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삶이 멈추지는 않는다. 공지영은 말한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갈 수 있다고. 그 문장은 묘하게 현실적이면서도 잔인하고, 동시에 깊이 위로가 된다. 나 역시 오래 붙잡고 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여전히 마음 한켠을 차지하고 있던 기억들, 아무리 설명해도 사라지지 않던 서운함과 죄책감. 이 책은 그런 감정들을 ‘정리해야 할 문제’로 만들지 않는다. 대신 그 감정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보여준다.

 

 

 이 책이 가진 힘은, 삶을 끝까지 설명하려 들지 않는 데 있다. 공지영은 신앙에 대해 말하지만, 그것을 해답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사랑에 대해 말하지만, 그것이 구원이 된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삶의 여러 국면에서 자신이 붙잡았던 생각과 질문들을 있는 그대로 내어놓는다. 그 태도는 독자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긴다. 우리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도 되고,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가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려 애썼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전해진다. 이 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는 사람의 기록에 가깝다. 그래서 더 진실하게 다가온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럼에도’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이 말을 쉽게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그러나 실제 삶에서 이 말을 선택하는 순간은 대부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끝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끌어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삶이 나아질 거라는 확신 없이도 하루를 견디는 일이다. 공지영은 이 단어를 가볍게 쓰지 않는다. 그는 ‘그럼에도’라는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좌절과 회의가 필요했는지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의 문장들은 희망적이기보다 결연하다. 기쁘지 않아도, 확신이 없어도, 그래도 선택하는 삶. 그 선택의 기록이 이 책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특히 상처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오래 남는다. 이미 무언가를 잃어본 사람, 믿었던 관계나 가치가 무너진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 책은 “다시 잘 살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다시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 차이는 크다. 우리는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자신을 쉽게 책망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태도에 조용히 제동을 건다. 잘 살지 못해도, 여전히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이 문장은 삶의 기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잣자를 다시 세우는 일처럼 느껴진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이 책의 문장들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감동이 커서라기보다, 삶의 현실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실망하며, 여전히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일을 살아낸다. 공지영은 그 사실을 과장하지 않고, 숨기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삶을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삶을 끝내 포기하지 말라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오래 남아, 힘든 날 문득 떠오른다.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와 있구나.” 이 책은 바로 그 인식 하나만으로도, 삶을 조금 더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기록이다.

 

 

클로이의 노트 :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삶을 긍정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무너진 자리에서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조용히 보여준다. 공지영의 문장은 상처를 지우려 하지 않고, 회복을 서두르지도 않는다.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 책에서 ‘그럼에도’라는 말은 희망의 선언이 아니라, 도망치지 않겠다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삶이 나아질 거라는 확신 없이도 오늘을 선택하는 일, 그 결연함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잘 살지 못한 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위로가 되었다. 이 책은 삶을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삶을 끝내 포기하지 말라고 낮은 목소리로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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