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의 생각』을 읽으며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마음이 조금 느려진다는 것이었다. 이 책은 독자를 앞으로 끌고 가지 않는다. 대신 잠시 멈춰 서게 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감정을 소모한다. 그중에서도 미움은 가장 빠르고 손쉬운 감정이다. 이유를 정리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를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미워하는 순간, 세상은 단순해지고 나는 피해자가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쉬운 길을 조용히 가로막는다. 그리고 묻는다. 정말로 그 감정이 필요한가, 그 미움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는가. 류시화의 문장은 다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오래 울리는 방식으로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누군가를 미워했던 순간들을 하나씩 떠올리게 되었고, 그때마다 그 미움이 나를 얼마나 무겁게 만들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결코 이상적인 선언이나 도덕적 목표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한 다짐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태도에 가깝다. 류시화는 오랜 시간 시와 명상을 통해 세계를 바라봐 온 사람답게, 인간의 감정을 너무 쉽게 단순화하지 않는다. 그는 분노와 원망, 상처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감정에 오래 머무는 것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는지 조용히 보여준다.
미워하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상대를 떠올리고, 그 기억을 반복 재생하며, 마음속에서 같은 장면을 되풀이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오히려 굳어진다. 이 책은 말한다.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를 용서하는 일이기 전에, 나 자신을 그 고통의 반복에서 꺼내는 일이라고. 이 관점은 미움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류시화의 글에는 늘 ‘거리’가 있다. 그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삶을 바라본다. 그 거리 덕분에 문장은 차분하고, 생각은 깊어진다. 이 책에 담긴 문장들은 대부분 짧고 간결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쉽게 소진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상처받았던 경험, 관계 속에서 억울함을 삼켰던 순간들,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꼈던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러나 이 책은 그 감정들을 증폭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 수도 있다”는 시선으로 감정을 느슨하게 풀어준다. 우리는 흔히 타인의 말과 행동을 ‘의도’ 중심으로 해석하지만, 류시화는 그 이면에 있는 무지, 두려움, 미완의 마음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그 시선은 상대를 미화하지도, 나를 희생자로 만들지도 않는다. 그저 상황을 조금 더 넓게 바라보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점은, 미움이 사라진 자리에 반드시 사랑이 들어서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였다. 우리는 종종 미움을 없애려면 반드시 용서나 이해, 화해 같은 큰 감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류시화는 그보다 훨씬 현실적인 선택지를 제시한다. 굳이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굳이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태도. 때로는 관계를 정리하지 않아도, 마음만 조금 멀리 두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
이 관점은 인간관계를 훨씬 숨 쉬기 쉽게 만든다. 모든 관계를 깊이 이해하고 끌어안으려다 보면, 결국 가장 먼저 지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이 책은 관계의 책임을 혼자 떠안지 말라고 말한다.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나에게 불필요한 감정의 짐을 내려놓겠다는 선택이다.
책의 곳곳에는 삶과 죽음, 시간과 자연에 대한 사유가 스며 있다. 류시화는 삶을 늘 ‘흐르는 것’으로 바라본다. 미움 역시 고정된 감정이 아니라, 잠시 머물렀다가 흘러가야 할 하나의 상태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감정을 붙잡고, 의미를 부여하고, 정체성처럼 끌어안는다. “나는 이런 일을 당했어”, “나는 이런 사람에게 상처받았어”라는 문장은 어느새 나를 설명하는 문장이 된다.
이 책은 그 문장들에서 조용히 빠져나오게 한다. 상처받은 경험이 나의 전부는 아니며, 누군가를 미워했던 시간 역시 나의 본질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삶은 계속 흐르고 있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언제든 다른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이 책은 아주 부드럽게 보여준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의 생각』은 위로를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스스로 마음의 결을 조정하도록 돕는다. 이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누군가를 떠올릴 때 예전보다 한 박자 늦추게 되었다. 즉각적으로 판단하거나 감정을 단정짓기보다, 그 사람 역시 불완전한 시간 속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변화는 크지 않지만 분명했다. 미움이 사라진 자리에 갑자기 평온이 찾아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이 덜 요동치고, 감정의 파도가 이전보다 낮아졌다는 느낌은 분명히 남았다. 이 책은 인생을 더 착하게 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인생을 조금 덜 아프게 살아도 된다고 말한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삶’이란, 이상적인 인간이 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나를 소모시키는 감정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선택에 가깝다. 우리는 미움을 통해 정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미움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류시화의 문장은 그 자유가 얼마나 조용하고 단단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삶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사람은 여전히 실망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 순간 어떤 태도를 취할지 선택할 수 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의 생각』은 그 선택의 방향을 조용히 비춰주는 책이다. 소리치지 않고, 설득하지 않으며, 다만 옆에 앉아 말한다. “그 감정, 꼭 쥐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 그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일상의 작은 순간마다 나를 조금 더 가볍게 만든다.
클로이의 노트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의 생각』은 누군가를 이해하라고 설득하는 책이 아니라, 나 자신을 덜 아프게 지키는 방법을 조용히 건네는 책이었다. 미움은 가장 빠르고 쉬운 감정이지만, 그 감정에 오래 머무를수록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이 책은 그 사실을 다그치지 않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알려준다. 굳이 미워하지 않아도 되고, 모든 감정을 해결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읽는 동안 나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반복 재생하던 감정들을 하나씩 내려놓게 되었다. 미움을 버리자 곧바로 평온이 찾아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마음의 소음은 한결 줄어들었다. 이 책은 착해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덜 소모하며 살아도 된다고 말해준다. 그 태도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REVIEW] 가장 오래 함께할 나와의 관계에 대하여 - 나는 죽을 때까지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1) | 2025.12.31 |
|---|---|
| [REVIEW] 희망을 말하지 않는 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0) | 2025.12.27 |
| [REVIEW] 삶을 가볍게 바라보는 연습, 『사는 게 뭐라고』 (0) | 2025.12.23 |
| [REVIEW] 우리는 왜 그렇게 쉽게 확신하는가 ―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고 (5) | 2025.12.20 |
| [REVIEW] 바쁜데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이유 ― 『딥 워크』를 읽고 (0) | 2025.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