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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현실과 비현실 사이, 두 개의 달 아래서 - 1Q84를 다시 읽고.

by CHLOENOTE 2025.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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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마음에 스며드는 감정은 ‘어긋남’이다. 그러나 하루키가 말하는 어긋남은 단순한 비틀림이나 왜곡이 아니라,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채 지나쳐온 현실의 미세한 균열을 감정의 표면 위로 천천히 떠올리는 방식에 가깝다. 2009년, 일본 사회는 오랜 경기침체 속 깊은 피로감을 안고 있었고, 사람들은 일상의 리듬 속에서 조금씩 침잠해가는 고립과 의심을 마음속 어딘가에 품고 있었다.

 

하루키는 그러한 시대의 공기를 고스란히 흡수한 채, 1984년이라는 구체적 시대 위에 ‘Q’라는 한 글자를 얹는다. 그 작은 변주가 만들어내는 파장은 생각보다 깊고 넓다. Q는 question, 질문이자 물음표이자,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현실’이라고 부르던 세계에 건네는 조용한 이중음처럼 느껴진다. 그는 거대한 서사를 꺼내 들면서도, 정작 독자가 보아야 할 것은 현실의 틈새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감정의 진폭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소설을 펼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1Q84년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어디가 다른지 명확히 짚을 수 없어 더 불안하고 더 아름다운, 그런 세계 말이다.

 

 

 그 공간 속에서 아오마메와 덴고는 마치 서로 다른 꿈에서 깨어나 같은 방을 바라보는 두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에서, 설명할 수 없는 낯섦과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간다. 하루키는 그들의 개인적 감정과 고독을 섬세하게 붙잡아 하나의 세계로 이어붙인다. 그 과정은 매우 조용하지만, 내면 깊숙한 층을 건드릴 만큼 강렬하다. 아오마메가 ‘현실의 문턱’을 넘어서는 장면이나, 덴고가 어느 순간 자신이 놓여 있는 세계의 기척이 전과 다르다는 것을 감지하는 순간들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흔들림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반드시 겪게 되는 감정, “이건 내가 아는 현실이 아닌 것 같아”라는 미묘한 인식 전환과 닮아 있다.

 

하루키는 두 개의 달이라는 상징을 통해 그 감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일상의 질감이 얼마나 쉽게 변형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단순한 판타지적 설정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세계관의 틈 사이로 스며드는 또 다른 가능성의 조각을 보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낯섦은 공포이기도 하고, 어쩐지 귀하게 느껴지는 어떤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그 세계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단순한 고독을 넘어,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드는 본질적 감정이 된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판타지적 장치나 평행세계라는 설정이 그저 이야기의 ‘틀’로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루키는 그 틀을 통해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들—사랑, 상실, 운명, 불확실성—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아오마메와 덴고가 서로의 존재를 향해 수많은 우연과 층위를 건너 다가가는 과정은, 우리가 현실의 수많은 갈래 속에서 어떤 인연을 만들고 또 잃어버리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들은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연결된 듯 보이지만, 동시에 그 힘은 너무나 미세하고 불확실해 보이기도 한다. 마치 현실에서 우리가 느끼는 관계의 본질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종종 어떤 사람을 향해 자연스럽게 마음이 이끌리거나, 어떤 순간이 마치 오래전부터 예정된 듯 느껴질 때가 있다.

 

하루키는 이러한 감정을 단순한 운명론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직접 보이지 않는 실들이 우리의 삶을 조용히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각을 은근히 심어놓는다. 종교와 권력의 문제, 집단과 개인의 충돌,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폭력의 구조 같은 사회적 질문들 역시 소설의 이면에 흐르며 더 풍부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모든 질문들은 독자를 향해 명확한 결론을 들이밀지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의 여백을 따라 흘러다니며, 독자가 자신만의 답을 조용히 찾게 만든다.

 

 

 책장을 덮는 마지막 순간, 『1Q84』는 단순한 소설 이상의 경험으로 변한다. 그것은 마치 현실이라는 단단한 바닥이 조금 미끄러져 내려가고, 그 아래에 또 다른 세계가 겹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막 알게 된 사람의 마음 같은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절대적인 하나가 아닐지 모른다는 불안, 동시에 다른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묘한 설렘이 동시에 깃든다.

 

하루키는 그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천천히 스며들도록 만들며, 독자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래 남는 잔향은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는 문득, 아주 작은 선택 하나만 달랐어도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그 생각은 어느새 내 삶을 향한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진다.

 

『1Q84』는 완결된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질문을 오래 품게 만들고, 현실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며, 우리가 걷는 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것이 하루키 문학이 가진 힘이자, 이 소설이 독자에게 선사하는 가장 큰 선물이다. 결국 『1Q84』는 세계를 바꾸는 소설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나’를 바꾸는 소설이다. 그 변화는 조용하지만 오래도록 깊게, 그리고 따뜻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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