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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왜 우리는 책을 사놓고 안 읽을까

by CHLOENOTE 2026.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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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사는 순간은 늘 가볍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거나, 온라인 장바구니에 책을 담고 결제 버튼을 누를 때 우리는 이미 그 책을 읽은 사람처럼 느낀다. 아직 첫 문장도 펼치지 않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조금 더 나은 나’에 가까워진 듯한 감각이 먼저 생긴다. 그래서 책을 사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책장은 점점 빽빽해지는데, 읽은 책은 늘 비슷한 자리에 머문다. 우리는 왜 이렇게 자주 책을 사놓고 읽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게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현상을 의지의 문제로 설명한다. 바빠서, 피곤해서, 집중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하지만 책을 사놓고 안 읽는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에게 반복된다. 이 반복성은 개인의 성실함보다는 인간의 심리 구조와 더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다. 우리는 사실 ‘책을 읽고 싶어서’ 책을 사는 경우보다, ‘책을 읽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책을 사는 경우가 더 많다. 책은 독서 도구라기보다, 이상적인 자아를 상징하는 물건에 가깝다. 책을 소유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이상적인 자아에 한 발 가까워졌다고 느낀다. 이 심리적 만족은 실제 독서를 시작해야 할 에너지를 미리 소모시킨다.

 

 여기에는 중요한 착각이 하나 숨어 있다. 우리는 책을 사는 행위와 책을 읽는 행위를 같은 선상에 놓는다. 하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종류의 행동이다. 책을 사는 일은 즉각적인 보상이 따르는 소비다. 결제와 동시에 성취감이 발생하고, 가능성을 확보했다는 안정감이 뒤따른다. 반면 책을 읽는 일은 지연된 보상을 요구하는 행위다. 집중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감정을 따라가야 한다. 결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이런 행동을 미룬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지 않으면서도 또 다른 책을 산다. 읽지 못한 죄책감을 새로운 구매로 상쇄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책은 점점 ‘읽을 대상’이 아니라 ‘보유한 가능성’으로만 남는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독서를 너무 큰 의미로 설계해버렸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펼칠 때 무의식적으로 기대한다. 이 책을 읽으면 생각이 달라져야 하고, 삶이 조금은 나아져야 하며, 최소한 뭔가를 얻어야 한다고. 이런 기대는 독서를 시작하기 전부터 부담을 만든다. 그래서 책을 읽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완벽하게 수행해야 할 과제’가 된다. 몇 장 읽다가 집중이 흐트러지면, 우리는 금세 판단한다. 이 책은 나랑 안 맞는 것 같다고. 그리고 다시 다른 책을 산다. 이렇게 독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회피의 문제가 된다. 읽지 않는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독서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아니라 성취 과제로 변했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삶의 리듬 역시 이 문제를 강화한다. 우리는 하루 종일 빠른 자극 속에 노출되어 있다. 알림, 영상, 뉴스, 메시지. 모든 것은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이런 환경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 소비가 아니라 속도를 늦추는 선택이다. 책은 타인의 언어를 따라가야 하는 매체다.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도, 이해의 흐름도 독자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 행위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이미 하루를 버티는 데 에너지를 거의 사용한 상태에서 책 앞에 앉으면, 책은 휴식이 아니라 또 하나의 부담처럼 느껴진다. 결국 우리는 가장 편한 선택을 한다. 지금 당장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는 행동. 책은 그대로 책장에 남고, 독서는 다음으로 미뤄진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독서에 대한 자기 인식도 조금씩 바뀐다. 처음에는 단순히 ‘못 읽었다’였던 감정이, 점점 ‘나는 꾸준히 읽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판단으로 굳어진다. 이 판단은 다시 독서를 어렵게 만든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실패를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독서는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읽지 못한 날은 스스로를 실망스럽게 느끼고, 읽은 날조차 충분히 읽지 못했다는 감각이 남는다. 독서는 더 이상 삶을 확장하는 도구가 아니라, 삶의 부족함을 증명하는 장치가 된다.

 

 하지만 책을 사놓고 안 읽는 현상은, 독서를 대하는 태도라기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 더 가깝다. 우리는 늘 완성된 상태의 자신을 상상한다. 더 많이 알고,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단단해진 나. 책은 그 이상적인 자아로 가는 가장 손쉬운 상징이 된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불완전한 상태로 흐른다. 집중력이 없는 날도 있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으며, 문장을 따라갈 힘조차 없는 날도 있다. 이런 상태에서 독서를 지속하려면, 독서를 성장 도구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로 다시 내려놓아야 한다. 책은 나를 바꾸기 위해 읽는 대상이 아니라, 지금의 나와 함께 머무르기 위해 읽는 대상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책을 사놓고 안 읽는 이유는, 책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매번 집중할 수 있어야 하고, 매번 의미를 얻어야 하며, 매번 이전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독서는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책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우리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상태가 되기를 기다리며 삶을 미룬다. 그러나 그런 완벽한 상태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오히려 독서는 불완전한 상태에서 시작할 때 가장 오래 남는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고, 끝까지 읽지 않아도 괜찮고, 며칠 쉬어도 괜찮다는 허락이 있을 때 책은 다시 손에 잡힌다.

 

 그래서 “왜 우리는 책을 사놓고 안 읽을까”라는 질문은, 결국 “우리는 왜 스스로에게 이렇게 높은 기준을 요구할까”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책을 사는 일은 쉽지만, 책을 읽는 일은 자기 자신과 함께 머무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우리는 책을 소비하면서도 독서를 피한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책이 아니라, 더 느슨한 독서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사람이 되기보다, 책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을 허락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 순간부터 책은 더 이상 쌓이는 물건이 아니라, 다시 삶의 일부가 된다.

 

 

클로이의 노트::

 이 책 없는 독서 이야기를 쓰며, 책을 사놓고 읽지 못했던 나의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동안 나는 읽지 못한 이유를 의지나 성실함에서 찾았지만, 사실은 독서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 달라져야 하고, 성장해야 하며, 이전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기대가 독서를 무겁게 만들었다. 이 글을 쓰며 독서는 완성된 상태에서만 가능한 행위가 아니라, 불완전한 상태에서도 허락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오래 남았다. 책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우리가 조금 느슨해질 때 다시 손에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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