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를 때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추천에 기대게 된다. 서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베스트셀러 코너, SNS를 켜면 반복해서 등장하는 몇 권의 책, “이건 꼭 읽어야 해”라는 문장들. 추천은 바쁜 일상 속에서 선택의 부담을 대신해주는 편리한 장치다.
무엇을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조차 에너지일 때, 추천은 누군가 대신 길을 골라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추천을 따라 읽었음에도 책이 기대만큼 닿지 않았던 경험은 꽤 흔하다. 책을 덮고 난 뒤 남는 것은 감동이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거리감일 때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종종 자신을 의심한다. 내 취향이 까다로운가, 아니면 요즘 책들이 다 비슷해진 건가. 그러나 많은 경우 문제는 책이 아니라, 추천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다.
추천이 자주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좋은 책’과 ‘나에게 맞는 책’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추천 글에서 가장 흔히 등장하는 표현은 “누구에게나 좋은 책”이다. 하지만 독서에서 이 말은 거의 성립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좋다는 말은 사실 아무에게도 정확히 맞지 않는다는 뜻일 수 있다. 책은 언제나 독자의 상태와 함께 작동한다. 같은 문장도 어떤 시기에는 위로가 되고, 어떤 시기에는 부담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추천에서 보편적 평가만 보고 그것을 자신의 현재 상태에 그대로 대입한다. 그 순간 독서는 이미 어긋나기 시작한다. 별점과 리뷰는 평균일 뿐이고, 평균은 언제나 개인의 감정과는 거리가 있다.
믿기 어려운 추천 글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추천의 대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즘 많이 읽히는 책”, “무조건 읽어야 할 책”, “인생책”이라는 표현은 많지만, 정작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 책인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추천은 독자에게 판단의 책임을 떠넘긴다. 반대로 믿을 만한 추천은 다르다. 관계에 지친 사람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에게, 일상의 리듬을 잃은 사람에게. 추천의 대상이 분명할수록 독자는 그 책이 지금의 나에게 맞는지 스스로 가늠할 수 있다. 좋은 추천은 책을 대신 선택해주지 않는다. 대신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을 건넨다.
추천이 어긋나는 또 다른 이유는 많은 추천 글이 줄거리 요약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책의 내용을 알려주지만, 책의 경험을 전달하지는 못한다. 같은 이야기라도 누가 어떤 문장으로, 어떤 태도로 썼는지에 따라 독서 경험은 전혀 달라진다. 어떤 책은 이야기보다 문장의 속도가 중요하고, 어떤 책은 결론보다 과정이 오래 남는다. 그런데 줄거리 위주의 추천은 이런 차이를 모두 지워버린다. 우리는 이야기를 안다는 착각 속에서 책을 고르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그 책의 결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느낀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은 추천자의 위치다. 많은 추천 글은 이미 모든 감정을 통과하고, 완전히 정리된 시점에서 쓰인다. 이때의 문장은 단정적이고 명확하다. 이렇게 하면 된다, 이 책이 답이다. 하지만 지금 흔들리는 독자에게 이런 추천은 오히려 거리감을 만든다. 고통의 과정이 생략된 서사, 지나치게 깔끔한 결론은 위로보다 비교를 남긴다. 믿을 만한 추천은 완성된 답보다 흔들리는 과정을 함께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이 어려웠는지, 어떤 부분이 끝내 닿지 않았는지까지 솔직하게 드러내는 글일수록 독자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얻는다.
추천을 믿지 못하게 되는 마지막 이유는 우리가 나만의 기준 없이 추천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추천이 늘 실패로 끝난다면,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 추천은 어떤 기준으로 쓰였을까. 이 책은 어떤 상태의 사람에게 맞을까. 지금의 나와 이 추천은 얼마나 겹칠까. 이 질문을 거치지 않은 추천은 단지 정보에 불과하다. 책 추천은 따라야 할 지침이 아니라, 참고해야 할 자료에 가깝다.
좋은 책 추천은 책을 대신 선택해주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판단의 단서를 제공한다. 이 책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어떤 상황에서는 맞지 않을 수 있는지, 읽고 나면 무엇이 남는지. 이런 정보가 담긴 추천이라면, 설령 그 책이 나에게 맞지 않더라도 추천 자체는 실패가 아니다. 책 추천이 늘 어긋났다면, 그건 독서 감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직 나만의 기준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추천을 덜 믿어야 하는 게 아니라, 추천을 선별해서 읽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클로이의 노트 ::
책 추천을 따라 읽고도 공허함이 남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나는 취향을 의심했지만, 이 글을 쓰며 깨달은 것은 기준의 부재였다. 추천은 편리하지만 선택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누구를 위한 추천인지, 지금의 나와 얼마나 겹치는지를 묻지 않으면 좋은 책도 쉽게 어긋난다. 책 추천이 실패였던 경험은 독서 감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할 질문을 건너뛰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추천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나의 상태를 먼저 묻는 독서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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