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그 단어만으로도 많은 풍경이 스쳐갑니다. 무거운 어깨를 이끌고 가는 버스 안, 창밖으로 스며드는 석양빛, 짧은 한숨과 멍한 눈빛이 오가는 시간. 이어폰에서는 익숙한 노래가 흐르고, 지친 하루를 보내고 난 마음은 더 이상 어떤 소리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들죠.
그럴 때에는 책 한 권이, 단 몇 페이지의 문장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마음을 틀어주기도 합니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누군가의 삶 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가는 그 감각. 그것이 퇴근길 소설의 매력입니다.
이 시간에는 장대한 세계관이나 복잡한 구조의 소설보다는, 짧지만 강한 몰입을 줄 수 있는 작품들이 더 어울립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퇴근길,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이야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어깨를 맞대면서도, 그 너머를 상상하게 해주는 이야기. 오늘은 그런 순간을 만들어줄 두 권의 소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번째, 📘 『보건교사 안은영』 – 현실 위에 놓인 기묘한 위로
첫 번째 추천작은 정세랑 작가의『보건교사 안은영』입니다. 이 책은 ‘보건교사’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퇴마사가 주인공이라는 기묘한 설정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학교 안에 도사리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 그리고 그것들을 ‘젤리’라 부르며 퇴치하는 주인공 안은영의 이야기는 얼핏 유쾌한 판타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지나쳐온 ‘이상함’들이 날카롭게 들어있죠. 학생들 간의 관계, 학교라는 공간이 지닌 구조적 문제,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폭력의 양상들이 젤리라는 환상의 장치 아래에 포장되어 드러납니다.
이 책이 퇴근길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이유는, 빠른 전개와 짧은 챕터 구성 덕분입니다. 정세랑 작가 특유의 밝고 명징한 문체는 무거운 하루를 살아낸 머릿속에도 가볍게 스며들겁니다. 현실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판타지라는 작은 틈을 통해 숨 쉴 여지를 만들어주는 이 책은,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위로의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정세랑 작가가 책을 통해 이야기하는 ‘다름을 수용하는 방식’은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곱씹기에 참 좋은 주제입니다.
두번째,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공감 가능한 미래, 따뜻한 SF
두 번째 책은 김초엽 작가의『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입니다. 이 책은 ‘한국형 SF 단편집’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지금 이 순간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이야기입니다.
SF 장르라고 하면 낯설고 어려운 과학 용어, 거대한 스케일의 우주가 먼저 떠오르지만, 김초엽 작가의 글은 놀랍도록 따뜻하고 섬세해요. 기술보다는 사람, 미래보다는 감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누구나 편안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각 이야기마다 배경은 다르지만, 중심에는 늘 '관계'와 '이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낯선 행성에서 살아가는 인간, 우주선 안에서 홀로 남겨진 로봇, 기억을 저장하는 기술 속에서 사라지는 감정들. 이 모든 설정은 결국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퇴근길이라는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김초엽 작가의 이야기는 조용히 마음을 두드리고, 오늘의 피로를 조금은 덜어내는 감정의 구멍을 만들어줍니다.
🛋 책이 만들어주는 퇴근길의 작은 휴식
오늘 소개한 두 권의 소설은 퇴근길이라는 짧은 시간, 그리고 가만히 앉아 있는 그 공간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줍니다.
책은 단지 활자가 나열된 물건이 아니라, 새로운 감정과 풍경으로 향하게 하는 하나의 문이 되거든요. 피곤한 하루를 살아낸 당신의 어깨 위에 말없이 얹히는 이야기 하나가 때로는 어떤 위로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기도 합니다.
특히 『보건교사 안은영』은 피로한 일상 속에서도 상상력을 놓지 않게 만들어주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미래와 기술이라는 무대를 통해 오히려 더 인간적인 감정을 마주하게 해줍니다. 이 두 책의 방향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우리의 감정 깊숙이 들어와 조용한 온기를 남깁니다.
🌙 하루의 끝에서 만나는 이야기의 힘
소설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다른 삶을 살아보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바뀌지 않지만, 그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퇴근길이라는 짧은 통로에서 만나는 두 권의 소설은, 그렇게 새로운 시선 하나를 건네줍니다. 꼭 완독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단 몇 페이지, 몇 문장만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오늘도 고단한 하루를 보낸 당신. 버스 창가에 기대어 책 한 권을 펼쳐보시는 것 어떨까요? 그 안에서, 조금 다른 하루의 결말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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